Friday, February 09, 2007

세상은 그런게 아닙니다.


퇴근시간 즈음에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쏟아졌다.
도로 위의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나도 이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건물의 좁은 처마 밑으로 뛰어 들었다.

그 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청년이 서 있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하자 할아버지 한 분이 가세하셨다.

그런 다음 중년 아저씨 한 분이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비좁은 틈으로 끼어 들었다.

출근시간의 만원버스처럼 작은 처마 밑은 낯선 사람들로 금세 꽉 찼다.
사람들은 이 비 좁은 틈에 서서 멀뚱멀뚱 빗줄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뚱뚱한 아줌마 한 분이 이쪽으로 뛰어 오더니
이 가련하기 짝이 없는 대열로 덥석 뛰어 들었다.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던가?
아주머니가 그 큼직한 엉덩이를 들이대면서 우리의 대열에 끼어 들자
그 바람에 맨 먼저 와 있던 청년이 얼떨결에 튕겨 나갔다.

그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쭉 훑어 보았다.
모두들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젊은이, 세상이란 게 다 그런거라네."


그 청년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쳐다보더니 길 저쪽으로 뛰어갔다.
한 사오분 쯤 지났을까?
아까 그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 우산 5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다.

"세상은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청년은 다시 비를 맞으며 저쪽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청년이 쥐어준 우산을 쓰고 총총히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나 세상은 다 그런거라고 말한 할아버지만은
한참동안을 고개를 숙이고 계시더니 우산을 바닥에 놓고는 장대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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