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February 15, 2007

아내의 빈자리


(2003년 11월 6일 발송 편지)

- 첫 번째 매 -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
지금도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갑작스런 출장으로 아이에게 아침도 못 챙겨주어
마음이 허전하여 하루를 보내고
늦게 돌아와 침대에 벌렁 누웠는데 순간.....
"푹 - 슈 ~ "소리를 내며 손가락만하게 불어터진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졌습니다.
펄펄 끓은 컵라면이 이불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일어난 과정은 무시하고 아이를 불러 마구 때렸습니다.
계속 때리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이 울면서
한 한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평소에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면 안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하고 데워진 물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지 않게 이불로 덮어 놓았는데,
아빠 올 때 너무 반가워 깜빡 잊었다는 것입니다.

........ 아들 앞에서 우는 것이 싫어서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그날 밤 저는 잠든 아이 방문에
오랫동안 머리를 기대어 넋 놓고 서 있었습니다.


- 두 번째 매 -

일년 전 아이와 그 일이 있고난 후,
내 나름대로 4년 전 내 곁을 떠난 아내 몫까지 하려고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아이도 티 없이 맑게 커가고.....
아이의 나이 일곱 살, 얼마 후면 유치원을 졸업하고
내년에는 학교에 갑니다.

어느 날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유치원에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안한 마음에 조퇴를 하고 집에 와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엄마 없는 아이를 부르며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그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혼자 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화가 나서 집으로 와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한 마디 변명도 않고 잘못을 빌더군요.


- 세 번째 매 -

그 날 이후 글을 다 배웠다고
너무 기뻐하며 저녁만 되면 자기 방에서 꼼짝도 않고
글을 써 대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없었지만......

하늘에서 아이 모습을 보고
미소 지을 아내를 생각하니
난 또 다시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흘러나오는데
또 아이가 한 차례 일을 저질렀습니다.
회사에서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우표도 없이
편지 300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 우체국 업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친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다시는 들지 않으려 했던 매를 또 다시 들었습니다.
이번에도 변명 않고 잘못했다는 소리 뿐.
이후 우체국에서 편지 모두를 가지고 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아이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하늘나라 엄마에게 편지를 보낸 거라고.
순간 울컥 나의 눈시울이 빨개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바로 앞에 있어 울음을 참고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많은 편지를 한꺼번에 보냈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편지를 써왔는데
우체통보다 키가 작아 써오기만 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재보니 우체통에 손이 닿길래
그동안 써온 편지를 한꺼번에 넣은 것이라고 하더군요.

전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하늘에 계시니까 편지를 써서
불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내자고
그리고는 그 편지를 가지고 밖에 나왔습니다.

주머니 속에 라이터를 꺼내 그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아이가 엄마한테
무슨 얘기를 썼을까 궁금해 졌습니다.
그래서 태우던 편지 하나를 읽어 보았습니다.


- 보고 싶은 엄마에게! -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를 했어.
그런데 나는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가 엄마 생각할까봐 아빠한테 얘기 안 했어.
아빠가 나를 찾으려고 막 돌아다녔는데
난 일부러 아빠 보는 앞에서 재미있게 놀았어.
그래서 날 아빠가 마구 때렸는데도
난 끝까지 얘기 안 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 생각나서 우는 거 본다!
근데 나, 엄마 생각 이제 안 나..... 아니.....
엄마 얼굴이 생각이 안 나....
엄마 나 꿈에 한번만 엄마 얼굴 보여줘... 알았지?


- 이 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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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고 철없다고만 생각했더니
그 속이 어른보다 깊습니다.
때론 어른 같은 녀석의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온 세상을 품은 그 작은 가슴이
대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아내에게

아내에게

저만치서 허름한 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
"여보, 점심 먹고 나서 베란다 청소 좀 같이 하자."
"나 점심 약속 있어."

해외출장 가 있는 친구를 팔아 한가로운 일요일,
아내와 집으로부터 탈출하려 집을 나서는데
양푼에 비빈 밥을 숟가락 가득 입에 넣고
우물거리던 아내가 나를 본다.
무릎 나온 바지에 한쪽 다리를 식탁위에
올려놓은 모양이 영락없이 내가 제일 싫어하는
아줌마 품새다.

"언제 들어 올 거야?"
"나가봐야 알지."

시무룩해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서,
친구들을 끌어 모아 술을 마셨다.
밤 12시가 될 때까지 그렇게 노는 동안,
아내에게 몇 번의 전화가 왔다.
받지 않고 버티다가 마침내는 배터리를 빼 버렸다.

그리고 새벽 1시쯤 난 조심조심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내가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자나보다 생각하고 조용히 욕실로 향하는데
힘없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 갔다 이제 와?"
"어. 친구들이랑 술 한잔.... 어디 아파?"
"낮에 비빔밥 먹은 게 얹혀 약 좀 사오라고 전화했는데..."
"아... 배터리가 떨어졌어. 손 이리 내봐."

여러 번 혼자 땄는지 아내의 손끝은 상처투성이였다.

"이거 왜 이래? 당신이 손 땄어?"
"어. 너무 답답해서..."
"이 사람아! 병원을 갔어야지! 왜 이렇게 미련하냐?"

나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느 때 같으면, 마누라한테 미련하냐는 말이 뭐냐며
대들만도 한데, 아내는 그럴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엎드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기만 했다.
난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다.
아내를 업고 병원으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내는 응급실 진료비가 아깝다며
이제 말짱해졌다고 애써 웃어 보이며
검사받으라는 내 권유를 물리치고 병원을 나갔다.

다음날 출근하는데, 아내가 이번 추석 때
친정부터 가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노발대발 하실 어머니 얘기를 꺼내며 안 된다고 했더니
"30년 동안, 그만큼 이기적으로 부려먹었으면 됐잖아.
그럼 당신은 당신집 가, 나는 우리집 갈 테니깐."

큰소리친 대로, 아내는 추석이 되자,
짐을 몽땅 싸서 친정으로 가 버렸다.
나 혼자 고향집으로 내려가자,
어머니는 세상천지에 며느리가 이러는 법은
없다고 호통을 치셨다.
결혼하고 처음. 아내가 없는 명절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태연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여유롭게 클래식 음악까지 틀어놓고 말이다.

"당신 지금 제정신이야?"
"....."
"여보 만약 내가 지금 없어져도,
당신도 애들도 어머님도 사는데 아무 지장 없을 거야.
나 명절 때 친정에 가 있었던 거 아니야.
병원에 입원해서 정밀 검사 받았어.
당신이 한번 전화만 해봤어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거야.
당신이 그렇게 해주길 바랐어."

아내의 병은 가벼운 위염이 아니었던 것이다.
난 의사의 입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말하고 있는 건가,
아내가 위암이라고? 전이될 대로 전이가 돼서,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다고?
삼 개월 정도 시간이 있다고...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내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유난히 가을 햇살이 눈부시게 맑았다.
집까지 오는 동안 서로에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아내를 보며,
앞으로 나 혼자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어떨까를 생각했다.

문을 열었을 때, 펑퍼짐한 바지를 입은 아내가 없다면,
방걸레질을 하는 아내가 없다면,
양푼에 밥을 비벼먹는 아내가 없다면,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해주는 아내가 없다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아내는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가자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말도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은,
갑자기 찾아온 부모가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살가워하지도 않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공부에 관해, 건강에 관해, 수없이 해온 말들을 하고있다.
아이들의 표정에 짜증이 가득한데도,
아내는 그런 아이들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만 있다.
난 더 이상 그 얼굴을 보고 있을 수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여보, 집에 내려가기 전에...
어디 코스모스 많이 펴 있는 데 들렀다 갈까?"
"코스모스?"
"그냥... 그러고 싶네. 꽃 많이 펴 있는 데 가서,
꽃도 보고, 당신이랑 걷기도 하고..."

아내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이런 걸 해보고 싶었나보다.
비싼 걸 먹고, 비싼 걸 입어보는 대신,
그냥 아이들 얼굴을 보고,
꽃이 피어 있는 길을 나와 함께 걷고...

"당신, 바쁘면 그냥 가고..."
"아니야. 가자."

코스모스가 들판 가득 피어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에게 조금 두꺼운 스웨터를 입히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여보, 나 당신한테 할 말 있어."
"뭔데?"
"우리 적금, 올 말에 타는 거 말고, 또 있어.
3년 부은 거야. 통장, 싱크대 두 번째 서랍 안에 있어.
그리구... 나 생명보험도 들었거든.
재작년에 친구가 하도 들라고 해서 들었는데,
잘했지 뭐. 그거 꼭 확인해 보고..."
"당신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부탁 하나만 할게. 올해 적금 타면,
우리 엄마 한 이백만원 만 드려.
엄마 이가 안 좋으신데, 틀니 하셔야 되거든.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오빠가 능력이 안 되잖아. 부탁해."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아내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소리 내어...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고 말았다.
이런 아내를 떠나보내고... 어떻게 살아갈까....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아내가 내 손을 잡는다.
요즘 들어 아내는 내 손을 잡는 걸 좋아한다.

"여보, 30년 전에 당신이 프러포즈하면서 했던 말 생각나?"
"내가 뭐라 그랬는데..."
"사랑한다 어쩐다 그런 말, 닭살 맞아서 질색이라 그랬잖아?"
"그랬나?"
"그 전에도 그 후로도, 당신이 나보고
사랑한다 그런 적 한 번도 없는데, 그거 알지?
어쩔 땐 그런 소리 듣고 싶기도 하더라."

아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런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나도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니 커튼이 뜯어진 창문으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여보! 우리 오늘 장모님 뵈러 갈까?"
"장모님 틀니... 연말까지 미룰 거 없이, 오늘 가서 해드리자."
"................"
"여보... 장모님이 나 가면, 좋아하실 텐데...
여보, 안 일어나면, 안 간다! 여보?!..... 여보!?....."

좋아하며 일어나야 할 아내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난 떨리는 손으로 아내를 흔들었다.
이제 아내는 웃지도, 기뻐하지도, 잔소리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난 아내 위로 무너지며 속삭였다. 사랑한다고...
어젯밤... 이 얘기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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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떠나보낸 절절한 심정이
이 새벽 우리 가슴을 아릿하게 파고듭니다.
아내... 남편...
보통 인연으로 만난 사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마음, 제껴두지 마십시오.
지금 더 사랑하고 더 아끼세요.

Friday, February 09, 2007

세상은 그런게 아닙니다.


퇴근시간 즈음에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쏟아졌다.
도로 위의 사람들은 비를 피하기 위해 허둥지둥 뛰어다녔다.
나도 이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건물의 좁은 처마 밑으로 뛰어 들었다.

그 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청년이 서 있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하자 할아버지 한 분이 가세하셨다.

그런 다음 중년 아저씨 한 분이 들어왔고
마지막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비좁은 틈으로 끼어 들었다.

출근시간의 만원버스처럼 작은 처마 밑은 낯선 사람들로 금세 꽉 찼다.
사람들은 이 비 좁은 틈에 서서 멀뚱멀뚱 빗줄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뚱뚱한 아줌마 한 분이 이쪽으로 뛰어 오더니
이 가련하기 짝이 없는 대열로 덥석 뛰어 들었다.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했던가?
아주머니가 그 큼직한 엉덩이를 들이대면서 우리의 대열에 끼어 들자
그 바람에 맨 먼저 와 있던 청년이 얼떨결에 튕겨 나갔다.

그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쭉 훑어 보았다.
모두들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셨다.

"젊은이, 세상이란 게 다 그런거라네."


그 청년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쳐다보더니 길 저쪽으로 뛰어갔다.
한 사오분 쯤 지났을까?
아까 그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 우산 5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다.

"세상은 절대 그런게 아닙니다."

청년은 다시 비를 맞으며 저쪽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있다가 청년이 쥐어준 우산을 쓰고 총총히 제 갈 길을 갔다.

그러나 세상은 다 그런거라고 말한 할아버지만은
한참동안을 고개를 숙이고 계시더니 우산을 바닥에 놓고는 장대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Sunday, February 04, 2007

H.G. Underwood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 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 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H.G언더우드(연희 전문학교 창설자.초대교장)
1885년